Relationship
6th Solo Exhibition
집, 병, 가구, 건물, 자동차 등 모든 사물을 다른 것에 빗대어 보는 놀이, 또 다른 이름과 관련지어보는 것은 내 작업의 원동력이 되어준, 나만의 사고 습관이다.
PUN! FUN! RUN!
병은 비어 있다. 그래서 깨질 수 있다.
병은 비어 있다. 그래서 약도 되고 독도 된다.
병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병과 병 사이에서의 만남과 어긋남, 거기서 오는 오해와 균열, 어울리며 만들어지는 제3, 제4, 제5의 의미들에 주목해본다. ‘Bottle' 작품을 통해 이전에는 병신전, 병들의 세상, 병들 등 '병'이란 단어가 주는 언어유희적인 측면과 비유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병의 형태에 집중하였고 그 모습을 통해 연관되는 이미지와 의미들을 한 겹 더 얹어서 나타내고자 하였다. 인간 세상의 복잡함과 어울림을 보여주고자 했다.
<Relationship>
이번 병 작업은 특히 비슷하지만 다른, 다르지만 비슷한 존재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부부, 연인, 가족 등에서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서로의 관계에 집중하였다. 병들 같은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개인성이 담긴 인간 하나하나의 존재와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말하고 자 한다. 혼자일 때 조차도 우리는 관계 안에 있다. 나의 부족함은 내가 아닌 '너'가 채워주고, 너의 부족함은 ‘내’가 채워주며 함께 있을 때 의미를 가지는 존재들을 표현해보았다. 병의 면 분할을 통해 다양성을 표현하지만, 결국은 서로의 존재가 합쳐져야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담고자 한다. 작업 하나하나는 독립적으로 볼 수도 있고, 원하는 작업끼리 합쳐서 볼 수도 있다.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은 관계의 핵심인 것 같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아주 해로운 관계로 나타나는데, 결국은 친밀한 관계에서도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연인, 친구, 동료, 부부 등 다양한 관계에서 존중의 태도에 따라 그 관계의 방향과 무게 균형이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미묘한 관계의 차이를 병의 간격과 색의 선택, 위치 등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였다.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병들의 포지션과 긴장감을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하고자 의도하였다. 혼자만이 아닌 서로의 노력과 존중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좀 더 살만한 세상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Story
조각의 경계
김민영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삶에 있어서 필히 타인과의 밀접한 관계 속 서로 의지하며 그 형상을 이루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자 생김새도 성향도 가치관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지만 때로는 경계가 필요하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선이 모호해지고 흐릿해질수록 관계 속에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관계의 중심은 나 자신이지만 관계의 속성은 우리가 되기에 이상적인 관계 맺기를 위한 서로 간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 다름을 인지하고 인정하면서 서로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함께하는 관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매순간 노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희진 작가는 인간의 관계들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의 군상과도 같은 병을 소재로 활용하여 관계라는 주된 테마를 확립하고자 한다.
작가의 작업은 부부, 연인, 가족 등의 모습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과 다양성을 포착하고 병의 형태로 재편집하여 관계에 대한 태도를 정립하고 전세대의 공감을 유도한다. 작가는 목재의 형태를 변화시킨 평면과 입체 작업으로, 재료 특유의 결이나 질감을 통해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합판 목재를 직선과 곡선으로 면을 분할시킨 후 채색하여 평면에 조립하는 작업 과정은 화면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형식의 틀을 벗어나 생명력을 불어넣는 가능성을 지닌다. 조합된 면들은 조각난 퍼즐처럼 경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이들은 서로 의존하며 조화롭게 집단을 만들어 병의 형상으로 완성된다. 작품은 하나의 면 조각이 다른 조각에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우리의 삶과 유사하다. 분할된 면 조각은 각각의 존재들로, 이를 구분하고 균형을 이루어 보다 이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면의 경계는 관계의 중요성 인식과 바람직한 관계맺음을 위한 상호 간의 존중과 노력이라 말할 수 있다. 독립된 면은 면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분할된 경계와 색채의 관계에서 상호 보충적인 작용을 하고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합쳐진 내면세계를 반영한다. 단순한 형태의 면 위에 쌓아올린 다채로운 색채의 변화와 조합은 서로 다른 리듬감을 가진 역동적인 시각효과를 만들어내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고 절제된 미학이 돋보인다. 한편 목재를 자르고 깎아 만든 조형물은 물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보는 이의 시선을 재료의 본질에 집중시킨다. 이처럼 작가는 현대 미술에서 작품 본래의 질감과 물성을 존중하고 보존하여 미적 가치가 없다할 수 있는 재료와 기술을 예술 작품에 포함시킨다. 이렇듯 작품과 일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목재를 활용한 추상예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에 태어나 사랑하고, 슬퍼하고, 위로하고, 미워하면서 형성된 관계들로 하여금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인간이다. 인간은 외부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관계로부터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기 가치를 실현한다. 이에 작가는 관계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각 작품의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진전을 보여주며 우리라는 존재가 서로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는 인생의 여정에 내적인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목재를 창작하여 만든 독특한 질감의 매력적인 작품을 감상하며 본인과 관계 맺은 이들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내면에 숨겨진 감정까지 발견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